서태지와 아이들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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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앨범 1집 Seotaiji And Boys (데뷔) 1992 | → | |
Seotaiji And Boys 난 알아요 | |
아티스트 | |
유형 | 정규앨범 |
발매일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2. 03. 23. |
타이틀곡 | |
러닝타임 | 33:29 |
발매사 | (주)스포트라이트 |
기획사 | 반도음반 |
1. 개요 [편집]
초판 앨범 자켓 |
2. 데뷔와 반응 [편집]
당시 중고등학생들에게는 컬쳐 쇼크로 다가온 데뷔였다. 당시 토요일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던 <특종 TV연예>의 신인 소개 코너에서 대중들에게 처음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 다음 주 월요일 아침, "어제 서태지란 애 나온 거 봤냐?"가 잡담의 주제였다.
음악도 음악이었지만 춤도 끝장났었고 패션 또한 소방차형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땐 인터넷이고 뭐고 없던 시절이라 그 날 점심 교내 방송으로 <난 알아요>를 처음 들은 애들도 많았다. 그리고 화요일쯤엔 누군가가 가져온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을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2]로 돌려들었다.
수요일쯤엔 점심시간에 아예 카세트 크게 틀어놓고 춤 좋아하는 애들이 춤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해의 각종 체육대회 및 수학여행에서의 장기자랑은 "서태지와 아이들"로 완전히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그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난 알아요>와 <환상 속의 그대>가 가요톱텐에서 모두 골든컵을 수상하면서 유일하게 한 앨범에서 2곡의 골든컵을 배출한 그룹이 되었으며 특히 MBC에서는 <난 알아요>가 무려 10주동안이나 정상을 차지했다. 게다가 당시 앨범에 수록된 전 곡이 (심지어는 연주곡까지) 가요 차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결국 그들은 연말 신인상에서부터 가수왕까지 모든 상을 싹쓸이했다.
이 앨범은 170만장이 팔리면서 역대 데뷔 앨범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당시 국내 주류 음악과는 너무 동떨어진 음악이라 메이저 음반사에서 받아주지 않아, 당대 마이너 음반사였던 반도음반과 계약을 한 것인데 이게 대박을 쳤다.[3]
2010년 음악웹진 100BEAT가 선정한 1990년대 100대 명반에서 24위에 랭크되었다.
웹진 이즘 소속 평론가 현지운은 이 앨범에 대해 샘플링이 새로운 창작 기법으로 등장한 앨범이라 평가했으며, 그동안 외면받았던 댄서들을 햇빛 찬란한 곳으로 인도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리믹스 시장의 잠재성을 폭발시켰다는 점도 중요하게 언급했다. 링크
2020년 7월 5일, 피치포크에서 앨범을 리뷰하여 8.3점을 주었다. 한국 대중음악 음반 중에서는 가장 높은 점수로 알려져 있다. #
3. 대중가요 변화의 시작 [편집]
데뷔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어로 제대로 된 랩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서태지는 이 앨범을 성공시킴으로서 본격적인 한국어 랩의 시발점을 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의 대성공 이후로 대한민국 가요계는 하나부터 끝까지 다 바뀌었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먼저 가요계 장르는 트로트와 발라드의 양강 구도에서 댄스 음악 중심으로 바뀌었고, 가요계 소비층은 20대 이상, 특히나 40대 이상 중장년층 중심에서 10대들 중심으로 바뀌었다. 또한 무대의상도 컨셉상 입은 의상을 제외하면 정장이 상당수였으나 서태지와 아이들이 캐쥬얼한 패션, 책가방을 들고 나오거나 캡모자도 많이 착용하는 등 상당한 변화를 이끌었다. 그리고 활동 중단과 컴백도 이때부터 보편화됐다.
가장 중요한 변화인 대중들이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도 이때부터 바뀌었다. 신승훈이 1집부터 2집까지 소포모어 징크스 없이 전성기를 누리면서 장기집권할 듯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그 인기에 도전이 들어왔고 결국 1집을 낸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상을 3회 수상하는 대사건이 일어났다.
그 변화가 뜻하는 바는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을 기점으로 한 가수가 최고인기를 장기집권 하는 사례가 없어질 정도로 대중들 소비방식이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60년대에 이미자가, 70년대에 남진, 나훈아, 80년대에 조용필이 3년 이상 그것도 3년 연속 원탑으로 장기집권 했던 사례가 있었다.[4]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로 현재까지 장기 집권한 사례는 HOT나 조성모 밖에 없을 정도로 줄어들었다.[5] 가히 대한민국 가요사상 최대 사건이라 할만하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의 대성공 이후로 대한민국 가요계는 하나부터 끝까지 다 바뀌었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먼저 가요계 장르는 트로트와 발라드의 양강 구도에서 댄스 음악 중심으로 바뀌었고, 가요계 소비층은 20대 이상, 특히나 40대 이상 중장년층 중심에서 10대들 중심으로 바뀌었다. 또한 무대의상도 컨셉상 입은 의상을 제외하면 정장이 상당수였으나 서태지와 아이들이 캐쥬얼한 패션, 책가방을 들고 나오거나 캡모자도 많이 착용하는 등 상당한 변화를 이끌었다. 그리고 활동 중단과 컴백도 이때부터 보편화됐다.
가장 중요한 변화인 대중들이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도 이때부터 바뀌었다. 신승훈이 1집부터 2집까지 소포모어 징크스 없이 전성기를 누리면서 장기집권할 듯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그 인기에 도전이 들어왔고 결국 1집을 낸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상을 3회 수상하는 대사건이 일어났다.
그 변화가 뜻하는 바는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을 기점으로 한 가수가 최고인기를 장기집권 하는 사례가 없어질 정도로 대중들 소비방식이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60년대에 이미자가, 70년대에 남진, 나훈아, 80년대에 조용필이 3년 이상 그것도 3년 연속 원탑으로 장기집권 했던 사례가 있었다.[4]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로 현재까지 장기 집권한 사례는 HOT나 조성모 밖에 없을 정도로 줄어들었다.[5] 가히 대한민국 가요사상 최대 사건이라 할만하다.
4. 성적 [편집]
▶ |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1992년) | ▶ | ||
파일:SBS 로고.svg 스타상 가수부문 대상[6] | ||||
- | ▶ |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1992년) | ▶ | 서태지와 아이들 하여가 (1993년) |
→ |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1992년) | → | ||
5. 수록곡 [편집]
트랙 | 곡명 | 작사 | 작곡 | 편곡 |
01 | Yo! Taiji! | |||
02 | 난 알아요[7] | |||
03 | 환상속의 그대 | |||
04 | 너와 함께한 시간속에서 | |||
05 | 이 밤이 깊어가지만 | |||
06 | 내 모든 것[8] | |||
07 | 이제는 | |||
08 | Blind Love (English Ver.) | William.B | ||
09 | Rock'N Roll Dance ('92 Heavy Mix) | Angus Young | ||
10 | Missing | - | ||
<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이 밤이 깊어가지만> 3곡을 제외하면 묘하게 팬송의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나머지 곡들은 서태지 솔로 커리어에서 굉장히 중요한 곡들이 되며, 많은 퐐로들의 눈물을 쏙 빼놓는 곡들이 된다.
5.1. Yo! Taiji [편집]
인트로 성격의 짧은 노래. <난 알아요> 앞소절을 부르고 끝난다.
5.2. 난 알아요 [편집]
5.3. 환상속의 그대 [편집]
5.4.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편집]
5.5. 이 밤이 깊어가지만 [편집]
앨범의 다른 곡은 모두 서태지 작사/작곡이지만 이 곡은 양현석이 작사했다. 원곡은 다소 심플한 구성이나 Live & Techno mix에서 큰 폭으로 편곡이 되었다. 이후 활동은 거의 해당 버젼으로 이루어진 편. 리믹스 버젼에서 계속 사용되는 샘플링 음원은 No Woman No Cry (Roots mix)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9].
5.6. 내 모든 것 (Live Mix) [편집]
후일 Quiet Night 투어에서 밝히길 원래 <난 알아요>보다 먼저 만든 노래였다고 한다. 데뷔곡을 이걸로 할 뻔했다고. Quiet Night 컴백 콘서트에서 리믹스가 공개되며 서태지의 이혼과 결혼 후까지 남은 마지막 팬들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되었다. 서태지는 Quiet Night Live투어에서 "이제 갓 데뷔한 신인이 팬들의 함성소리를 미리 믹싱했던 패기"에 대해 언급하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준 팬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5.7. 이제는 [편집]
5.8. Blind Love (English ver.) [편집]
<난 알아요>의 영문 버전. '윌리엄 변'이라는 재미교포 친구가 가사를 준 곡이며 이 사람은 현재까지도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5.9. Rock'N Roll Dance ('92 Heavy Mix) [편집]
AC/DC의 <Back In Black>을 편곡•개사한 곡이다. 1집 콘서트 당시에는 대부분 국민학생 중.고등학생들로 이루어진 팬덤이 락음악은 생소하게 여겨서, 서태지와 친한 인디밴드가 등장해 AC/DC의 원곡을 부르고, 서태지와아이들+댄서들이 등장해 Back in Black 원곡을 소개하고 나서 Rock'N Roll Dance 버전으로 퍼포먼스했다.
이후 2000년 태지의 화 공연에서 서태지가 팬들에게 치킨 슬램을 가르칠 때 또 쓰였다(…)
이후 2000년 태지의 화 공연에서 서태지가 팬들에게 치킨 슬램을 가르칠 때 또 쓰였다(…)
5.10. Missing [편집]
연주곡으로 당시 테이프버전의 앞뒷면의 길이조정을 위해 삽입한 곡이며 아웃트로 개념의 곡으로 생각해도 좋다.
5.11. 재발매판 추가곡 [편집]
5.12. 라이브 영상 및 음원 링크 [편집]
6. 제작진 [편집]
레코딩 엔지니어: 서태지
컴퓨터 프로그래밍: 서태지
모든 수록 곡의 작사 & 작곡 & 편곡: 서태지
('이 밤이 깊어가지만' 작사 제외)
제작 : 유대영
기타 연주:
컴퓨터 프로그래밍: 서태지
모든 수록 곡의 작사 & 작곡 & 편곡: 서태지
('이 밤이 깊어가지만' 작사 제외)
제작 : 유대영
기타 연주:
서태지 - <난 알아요>, <환상 속의 그대>, <Blind Love>
신대철 - <Rock'N Roll Dance>
손무현 - <내 모든 것>
신대철 - <Rock'N Roll Dance>
손무현 - <내 모든 것>
신시사이저 연주: 서태지
색소폰 연주: 이정식
코러스: 양현석, 이주노, 김종서, 장혜진
앨범 커버 디자이너: 최성원
포토 스튜디오: G-Studio
제작사: 테크노 믹스 (Techno Mix)
레코딩 스튜디오: 테크노 믹스 스튜디오 (Techno Mix Studio)
믹싱 스튜디오: 서울 스튜디오
색소폰 연주: 이정식
코러스: 양현석, 이주노, 김종서, 장혜진
앨범 커버 디자이너: 최성원
포토 스튜디오: G-Studio
제작사: 테크노 믹스 (Techno Mix)
레코딩 스튜디오: 테크노 믹스 스튜디오 (Techno Mix Studio)
믹싱 스튜디오: 서울 스튜디오
[1] 여담으로 이 영상 맨 처음에 진행자였던 임백천이 맨 처음 음반 소개한 가수가 그 지석진 맞다. '난 알아요'가 묻힌 것도 덤. 자세한 내용은 지석진 문서 참조.[2] 삼성전자에서 발매한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상표명인 마이마이 또는 금성사(현 LG전자)에서 낸 아하로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 밖에도 서울 지역에서는 소니의 상표명인 워크맨을 통칭으로 쓰기도. 대우전자의 요요도 있긴 했지만.[3] 이 앨범이 반도의 14번째 앨범이다. 즉, 반도음반은 그 전까지 고작 13장의 앨범을 유통한 소형 음반사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 반도음반이 배출한 유명 가수는 주병선 정도였다.[4] 물론 이미자, 나훈아도 kbs 가요대상+ mbc 가요대상 그랜드 슬램을 3년 연속 수상하지는 못했다. 조용필도 이용(1982년 mbc 가요대상), 김수철(1984년 kbs 가요대상)이 대상을 수상하면서 그랜드슬램은 3년 연속 달성하진 못했다.[5] 조성모도 3장을 차례로 냈을 때 원탑을 유지했을 뿐이지 3년차 땐 전만 못했고, HOT도 대중성보다는 팬덤 중심으로 전성기를 유지했다.[6] 1996년부터 지금의 SBS 가요대전으로 분리되어 실시된다.[7] Club Mix[8] Live Mix[9] 허나 당시의 일반적인 리믹스 관행을 감안할 때 해당 곡의 사운드 역시 다른 샘플러에서 따왔을 가능성이 크므로 정확한 출처인지는 알 수 없다[10] TV활동에서 쓰였던 것과는 약간 다른 곡으로, 도입부에 사물놀이가 추가되었다. 중간 랩에도 약간 다른 부분이 있는데, TV활동에 쓰인 버전은 "하나, 둘, 셋, 렛츠고~" 앨범에 실린 버전은 "하나, 둘, 셋, 워~어"[11] 활동시기에 주로 사용한 버전. 중간에 비트가 더 살아났다. 2절에 양현석, 이주노 랩을 추가하고, 간주부분에 회오리 댄스에 맞는 효과음을 추가했다. 후렴구의 도입부가 원곡과는 약간 달라져서, 라이브를 염두한 것으로 추측된다. 곡이 끝날 때, 원곡이 Fade Out 처리되는 것과 달리 TV Edit는 끝까지 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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